마블이 남긴 두 가지 전장: 라이벌즈의 통제된 혼돈, 그리고 퍼니셔 로고의 통제 불능한 현실

마블 라이벌즈(Marvel Rivals)가 그야말로 파죽지세다. 2024년 12월 성공적인 론칭 이후 넷이즈가 내놓은 이 무료 히어로 슈터 게임은 쉴 새 없는 업데이트와 쏟아지는 신규 캐릭터로 유저들을 묶어두고 있다. 그리고 지금, MCU 역사상 가장 아이코닉한 순간을 다시 체험할 수 있는 판이 깔렸다. ‘운명의 길: 어벤져스(Path to Doomsday: The Avengers)’ 이벤트다.

이 신규 모드는 장난의 신 로키가 꺼내든 교활한 수에 맞서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영웅들이 분투하는 6대1 비대칭 전투를 다룬다. ‘클래식’ 모드를 선택하면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토르, 블랙 위도우, 호크아이, 헐크 등 원년 어벤져스 멤버 중 하나를 골라 전장에 설 수 있고, ‘올 히어로’ 모드에서는 로키를 제외한 모든 로스터가 개방된다. 물론 반대편에는 단 한 명의 유저가 흑막인 로키를 잡고 전장을 쥐락펴락하게 된다. 매칭 큐를 돌릴 때 영웅 진영, 로키, 혹은 빈자리가 있는 곳 아무 데나(Flexible) 들어갈지 선택할 수 있지만, 어느 쪽이든 결국 거점을 점령해야 승리하는 숨 막히는 난전이다.

시너지로 뭉친 영웅들, 그리고 규격 외의 권능을 쥔 로키

영웅 진영은 언제나 그렇듯 조합과 시너지가 생명이다. 눈여겨볼 만한 변수는 팀 내 헐크 유저와 별개로 동시에 필드에 존재할 수 있는 덩치 큰 ‘몬스터 헐크’를 소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난전 속에서 운만 좀 따라준다면 이 거대한 괴수가 얄미운 속임수꾼 로키를 말 그대로 찢어발길 수도 있다.

하지만 로키의 입장에 서면 이야기가 다르다. 6대1 비대칭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로키는 3,500이라는 빵빵한 기본 체력을 두르고, 온갖 사기적인 기술들로 무장한 채 군림한다. 마인드 스톤을 충전해 적을 묶어버리는 군주의 일격(Sovereign’s Strike)은 기본이고, 투명화 후 자유롭게 위치를 바꾸는 기만의 술수(Art of Deception)와 생성한 환영으로 순간이동하는 왕의 위엄(Royal Presence)으로 전장을 농락한다.

여기에 적중한 대상을 세뇌해 자기편으로 싸우게 만드는 무릎을 꿇어라(Bend the Knee), 아군 히어로의 AI를 밀어내고 본인이 직접 빙의해 모든 스킬을 난사하는 꼭두각시 줄(Puppet Strings)은 난전의 변수를 극한으로 끌어올린다. 심지어 평행세계에서 6명의 히어로를 소환해 수적 열세마저 뒤집어버리는 궁극기 시간 혼돈의 지휘(Chrono-Chaos Command)까지 꺼내 들면, 말 그대로 가상 세계의 전장을 완벽하게 지배하는 신이 될 수 있다.

가상 세계의 통제력, 그리고 현실에서 빼앗긴 상징

이렇듯 게임 속에서는 우리가 영웅과 빌런의 서사를 완벽하게 통제하며 카타르시스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모니터 밖 현실로 넘어오면 상황은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창작자가 빚어낸 영웅과 그 상징은 세상에 던져지는 순간, 종종 창작자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통제 불능한 궤도로 이탈해버리기 때문이다. 지난달, 그러니까 2026년 4월 우리 곁을 떠난 코믹스계의 거장 제리 콘웨이(Gerry Conway)가 남긴 발자취를 돌아보면 이 씁쓸한 아이러니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그는 1974년 존 로미타 시니어, 로스 앤드루와 함께 ‘퍼니셔(프랭크 캐슬)’를 창조했다. 하지만 콘웨이의 생애 전반을 돌아볼 때, 자신이 만든 이 캐릭터와의 관계를 마냥 성공적이고 영광스러운 것으로만 포장하기는 어렵다. 그는 평생에 걸쳐 퍼니셔가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군인, 경찰, 그리고 거대한 대안우파(alt-right) 세력이 퍼니셔의 해골 로고를 자신들의 심벌로 차용하는 현상을 두고, 콘웨이는 이를 캐릭터에 대한 심각한 오독이자 해당 기관들의 도덕적 타락을 보여주는 징후라며 날을 세웠다.

그의 분노가 틀렸다고 반박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당장 오늘의 뉴스 헤드라인만 훑어봐도 그가 왜 그토록 분통을 터뜨렸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되니까. 팟캐스트 ‘99% Invisible’에서 그가 직접 밝혔듯, 원래 프랭크 캐슬의 서사에 베트남 전쟁이 중요하게 다뤄진 건 당시 정부가 저지른 근본적인 사회적 범죄를 꼬집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 정부의 일원들이 자신들의 순찰차와 험비에 퍼니셔의 해골을 자랑스럽게 박아넣고 다닌다니, 이보다 지독한 모순이 또 있을까.

해골을 향한 통쾌한 가운뎃손가락

하지만 우리가 제리 콘웨이를 기억할 때, 그저 엇나간 팬보이들의 로고 남용에 분노만 하다 떠난 원작자로 남겨둬선 안 된다. 그는 침묵할 수 있었던 순간에 기어코 반격했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미국 전역에 시위가 들불처럼 번졌을 때, 이 코믹스 레전드는 BLM Skulls for Justice(정의를 위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해골) 캠페인을 열어 억압의 상징으로 전락한 로고를 다시 정의의 상징으로 되찾아오려 했다.

“퍼니셔는 분명 문제투성이 영웅이지만, 그래도 그는 항상 옳은 편에 서서 싸우려 했다.” 콘웨이는 데몬테 프라이스, 돈 응우옌 등 유색인종 아티스트들에게 해골 로고의 재디자인을 맡겼다. 대안우파의 기를 살려주는 대신 그들에게 정면으로 맞서는 상징으로 거듭난 새로운 해골 디자인들은 티셔츠와 모자에 새겨졌고, 성공적으로 7만 5천 달러를 모금해 LA의 BLM 지부에 기부했다.

그래서, 이 캠페인으로 세상이 바뀌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는 게 냉정한 현실일 거다. 여전히 코믹스 한 권 안 읽어본 마초들은 그 로고에 열광하고, 부패한 권력의 상징으로 심심찮게 쓰이고 있으니까. 퍼니셔의 해골이 온전하고 도덕적인 상징으로 남는 싸움에서는 우리가 이미 졌는지도 모른다. 상징이란 원래 그렇게 사람들의 욕망을 타고 제멋대로 흘러가는 법이다.